40·50대가 직장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법 - 김경일 교수의 인지심리학 조언

|Career & Strategy|14분 읽기

직장을 위해 목숨 바치는 건 바보짓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부하들에게 가장 존경받았던 장군 패튼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세상에 제일 바보 같은 놈이 나라 위해 죽는 놈이다."

과격하게 들립니다. 그런데 그가 하려던 말은 따로 있었습니다. 전투에서 열심히 싸우되, 생존 확률을 높여서 집에 돌아가라. 직장도 똑같습니다.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는 직장인이 빠지는 두 가지 극단을 모두 바보짓이라고 부릅니다.

  • 직장을 위해 혼신을 다 바치면서 정작 자기를 위한 일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것 — 바보짓
  • 주는 만큼만 딱 일하면서 자기 직무 기량은 한 발짝도 키우지 않는 것 — 역시 바보짓

정답은 "나도 살고 직장도 살자"입니다. 윈윈.

나는 개발자에서 시작해 아키텍트, 운영 PM, 컨설팅까지 자리를 옮겨왔는데, 자리가 바뀔수록 이 말이 더 또렷하게 보였습니다. 회사에 모든 걸 갈아 넣은 사람일수록 자기 시장가치를 따로 관리하지 못했고, 반대로 딱 받은 만큼만 하던 사람은 어느 순간 대체 가능한 리소스가 되어 있었거든요. 둘 다 결국 같은 곳에 도착합니다.

일이 즐거우면 정신질환이다?

뇌과학적으로 일할 때 뇌는 즐거워하지 않습니다. fMRI로 촬영해보면, 일하는 동안 쾌락 중추는 거의 반응하지 않는다고 하죠.

김경일 교수와 뇌과학자들이 세미나에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직장인이 일이 즐거우면 정신질환이다. 학생이 공부가 재밌으면 미친 거다."

그런데 입사 초반엔 분명 일이 즐거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건 착각입니다. 즐거웠던 게 아니라 성장감이 있었던 거고, 뇌가 그걸 즐겁다고 착각한 겁니다.

게임도 똑같습니다. 게임할 때 뇌를 찍어봐도 즐거워하지 않는다고 하죠. 레벨업이 계속 올라가니까, 성장감이 꽂히니까, 그걸 재미라고 착각하면서 몰입하는 겁니다.

생각해보면 신입 시절 새 프레임워크 하나 배워서 처음 동작시켰을 때의 쾌감, 그게 일 자체가 좋았던 게 아니었습니다. 어제의 나보다 한 칸 위로 올라간 감각이었죠. 그 감각이 사라지는 순간이 문제의 시작입니다.

40대 슬럼프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

40대쯤 되면 슬럼프가 옵니다. 반드시. 안 오는 게 더 이상한 겁니다.

웬만한 일은 다 루틴하게 처리하는 전문가가 됐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인지심리학의 전문가 정의가 흥미롭습니다.

전문가란, 그 일을 잘 해냈는데도 기쁘지 않은 사람. 훌륭하게 끝냈는데 옆에서 칭찬도 안 해주는 사람. 더 올라갈 칸이 없으니 성장감이 없는 거죠.

이때 오는 건 번아웃(Burnout)이 아닙니다. 번아웃은 감당 못 할 일을 너무 많이 떠안아서 오는 탈진입니다. 40대에 오는 건 그 반대, 보어아웃(Boreout)입니다.

같은 일을 계속 반복해서 뇌가 완전히 적응해버린 상태. 보어아웃이 오면 자신도, 회사도 비관적으로 보게 됩니다. "회사도 결국 다 아무 소용 없어", "네가 아무리 해봐야 안 돼" — 30대 초중반에 벌써 이런 말을 달고 사는 선배, 본 적 있지 않나요?

나는 이게 시스템이 안정화 단계에 들어선 운영 조직과 비슷하다고 봅니다. 장애도 없고 트래픽도 예측 가능하고 모든 게 자동화돼 있는데, 정작 그 안의 운영자는 가장 무기력해집니다. 잘 돌아가는 시스템이 사람을 죽이는 거죠.

해법: 작은 직무 변화를 요구하라

슬럼프를 깨려면 일에 변화를 살짝 줘야 합니다.

흥미로운 건, 사람들이 큰 변화보다 작은 직무 이동을 더 싫어한다는 점입니다. 큰 변화에는 "분명히 엄청난 뜻이 있을 거야"라며 합리화하고 따릅니다. 그런데 작은 변화에는 극렬히 저항합니다.

하지만 그걸 해야 합니다. 그리고 직접 요구해야 합니다.

"안 할 애가 아니라, 오케이 할게. 대신 이거 줘." — 이게 윈윈의 자세입니다. 한 번에 크게 확장하는 게 아니라, 약간의 확장을 여러 번 쌓는 거예요.

이렇게 가다 보면 엑스퍼트(Expert)를 넘어 마스터(Master)가 됩니다. 대체 불가능한 존재. 기업의 인사 담당 임원들은 지금도 소리 소문 없이 앞으로 30~40년을 남길 45·50대를 선별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걸 코드로 비유하곤 합니다. 같은 모듈을 10년 유지보수만 한 사람과, 그 모듈을 들고 옆 도메인으로 한 칸씩 넘어가본 사람은 5년 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됩니다. 후자는 "이 사람만 아는 맥락"이 쌓이거든요. 대체 불가능성은 한 우물의 깊이가 아니라, 우물과 우물 사이를 이어본 경험에서 나옵니다.

부자의 성격: 우호성과 개방성

성격을 다섯 가지 요인으로 볼 때, 외향성·성실성·신경증성은 거의 안 변합니다. 하지만 우호성과 개방성은 바뀔 여지가 있습니다.

  • 우호성: 다른 사람들과 잘 지내려는 성향
  • 개방성: 몰랐던 사실을 알려주는 사람을 밀어내지 않고 받아들이는 성향

부자가 되는 사람들의 특징은 의외로 명확합니다.

성격 조합 결과
우호성 적당 + 개방성 높음 부자가 가장 많은 유형
우호성 높음 + 개방성 높음 아무 말이나 다 듣는 사람
우호성 낮음 + 개방성 낮음 완전한 외톨이
우호성 높음 + 개방성 낮음 패거리끼리만 다니는 사람

적당한 우호성이란 뭘까요? 모든 사람과 잘 지낼 순 없지만, 필요한 사람과는 가까이 지내고, 함께할 수 없는 사람에게도 최소한 적은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컨설팅을 다니면서 가장 와닿았던 대목입니다. 기술이 아무리 좋아도 개방성이 닫힌 사람은 새 아키텍처를 끝까지 거부하다 도태됐고, 우호성만 높아 모두에게 좋은 소리만 하던 사람은 정작 중요한 판단에서 발을 못 뺐습니다.

니체의 단서: 감정이 아닌 행동을 약속하라

니체가 결정적인 단서를 줍니다.

감정을 쓸데없이 약속하지 말고, 행동을 약속하는 습관을 가져라.

"평생 회사를 위해 목숨 바치겠습니다" — 이건 감정의 약속입니다. 감정의 약속은 필연적으로 배신감으로 이어집니다. 감정은 변하니까, 수정도 회복도 안 됩니다.

반면 행동의 약속은 다릅니다.

  • "10시 전에는 이걸 해놓겠습니다"
  • "1시가 넘으면 이건 하지 않겠습니다"

행동 약속은 어길 수 있지만, 어긴 걸 알아챌 수 있고 반성하고 고칠 수 있습니다. 잘 굴러가는 조직들은 기업 문화를 전부 행동으로 정의해놓습니다. 송파구의 한 기업은 "일 잘하는 11가지 방법"을 모두 행동으로 못 박았습니다.

  • "9시 1분은 9시가 아니다"
  • "쓰레기는 보는 사람이 먼저 줍는다"

전부 행동의 약속이죠.

이건 시스템 설계 원칙과 똑같습니다. "열심히 하겠다"는 SLA가 아닙니다. "응답 시간 200ms 이내", "장애 시 5분 안에 알림" — 측정 가능한 행동이라야 지켰는지 어겼는지 판단이 서고, 어겼을 때 고칠 수 있습니다. 감정은 모니터링이 안 됩니다.

그릇의 크기에 대한 오해

"그 사람 그릇이 크다"는 칭찬처럼, "그릇이 작다"는 평가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김경일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에 그릇 큰 사람만 있으면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고.

작은 그릇은 사회의 평화와 안전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핵심은 자기 그릇에 맞는 물을 담는 것입니다. 그릇을 넘치게 물을 부으면, 그릇을 채우는 노력보다 흘러넘쳐 테이블을 닦는 데 더 큰 에너지를 쓰게 됩니다.

경제적 자유의 진짜 의미

경제적 자유가 "일을 안 할 권리"라고만 생각하면 함정에 빠집니다. 좋아하는 것만 40년, 50년 하면 그것도 고통이 됩니다. 아무리 행복한 자세도 2시간 넘게 취하면 지옥이 오듯이.

진짜 경제적 자유란, 싫어하는 일보다 좋아하는 일 쪽으로 옮겨갈 수 있는 자유입니다. 근로로 소득을 얻되, 자기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핸들을 틀 수 있다면 — 그 사람이 꽤 괜찮은 부자입니다.

그러려면 자기만의 부자 정의를 내릴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이 정도면 부자야." 이렇게 스스로 선을 긋는 훈련. 우리는 그런 훈련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멈추지 못하는 거죠. 기준이 외부에 있으면 영원히 도착하지 못합니다. 시스템에 임계치를 정의해두지 않으면 언제 스케일아웃을 멈춰야 할지 영영 모르는 것처럼.


이 글은 SBS '교양이를 부탁해' 채널의 김경일 교수 인터뷰 영상을 바탕으로 재구성했습니다.

#직장생활#자기계발#심리학#보어아웃#김경일교수#40대슬럼프#커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