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고 AI가 썼다면, 그 글은 누구의 것일까?

|AI for Work|16분 읽기

지난주에 AI와 기술 이야기를 하다가 글을 하나 쓰게 됐습니다. 주제는 Kubernetes, OKD, OpenShift의 차이였습니다.

처음엔 별생각이 없었습니다. 세 개를 비교하는 기술 글 하나 만들어보자는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밤 열한 시쯤 결과물을 읽다가 스크롤을 다시 위로 올렸습니다. 뭔가 이상했거든요.

"어? 이거 내가 쓴 것 같은데?"

문장은 분명 제가 쓰지 않았습니다. AI가 썼습니다. 그런데 그 글이 기술을 바라보는 방식이, 평소 제 방식과 이상할 정도로 비슷했습니다.

세 플랫폼을 기능표로 늘어놓는 대신 이런 결론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플랫폼의 기능이 더 많은가가 아니라, 어디까지 직접 운영하고 어디부터 벤더에게 책임을 맡길 것인가이다.

제가 입력한 문장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읽는 순간 '이거 내가 평소에 하던 생각인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좀 이상한 질문이 남았습니다. 그러면 이 글은 누가 쓴 걸까요.

AI가 대신 생각한 것과, 내 생각을 AI가 대신 표현한 것

AI로 글을 쓴다고 하면 보통 이런 그림을 떠올립니다. 챗봇을 열고 "Kubernetes에 대한 블로그 글 하나 써줘"라고 칩니다. 몇 초 뒤 글이 나옵니다. 복사합니다. 붙입니다. 발행합니다.

이 경우라면 저도 고민할 게 없다고 봅니다. 주제만 빼면 문제를 어떻게 볼지, 무엇을 주장할지, 어떤 근거를 쓸지, 어떤 결론을 낼지를 전부 AI가 정했으니까요.

이번엔 좀 달랐습니다.

저는 그동안 AI와 실제 업무에서 만난 기술 문제를 계속 이야기해 왔습니다. 왜 장애가 났는지. 애플리케이션 문제인지 플랫폼 문제인지.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말과 실제로 운영된다는 말이 왜 다른지. 무료라고 적힌 제품이 정말 돈이 안 드는지. 장애가 터졌을 때 마지막에 누가 책임지고 수습하는지.

글을 쓰려고 꺼낸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그냥 눈앞의 문제를 놓고 계속 떠들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AI에게 글을 쓰게 했더니, 그 대화에서 반복되던 제 판단 방식이 글 안으로 들어와 있었습니다.

그래서 재미있어집니다. AI가 제 생각을 대신한 걸까요, 제 안에 이미 있던 생각을 AI가 문장으로 옮긴 걸까요. 둘은 같은 걸까요.

개발자로 시작했지만 계속 '직접 만드는 일'만 한 건 아닙니다

이 질문이 흥미로웠던 이유는 제 경력과도 묘하게 닮아 있어서입니다.

개발자로 일했고 SI 프로젝트도 했습니다. 그 뒤로 DevOps와 시스템 운영, 아키텍처 역할, PM, 컨설팅까지 여러 자리를 거쳤습니다.

개발자일 때는 직접 코드를 썼습니다. 하지만 아키텍트가 됐다고 모든 코드를 제가 친 건 아닙니다. PM이 됐다고 프로젝트의 모든 업무를 제가 한 것도 아니고, 컨설팅을 한다고 시스템을 제가 다 구축하는 것도 아닙니다.

역할이 바뀌면서 직접 만드는 일보다 무엇을 만들지, 어떤 구조로 만들지, 누가 해야 하는지, 왜 해야 하는지 판단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그렇다고 타이핑을 안 했다는 이유로 그 의사결정까지 제 일이 아니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AI 글쓰기도 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누가 타이핑했는지가 그렇게 중요한가

소프트웨어 개발을 생각해 봅니다. 요즘 개발자는 모든 걸 직접 만들지 않습니다. 프로그래밍 언어를 씁니다. Framework를 씁니다. Open Source Library를 가져다 씁니다. Database를 쓰고, Cloud를 쓰고, Kubernetes를 씁니다. 수많은 추상화 위에 시스템을 얹습니다.

Spring을 쓰는 개발자에게 "HTTP Server부터 직접 만들지 않았으니 그 프로그램은 네가 만든 게 아니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Kubernetes를 쓰는 아키텍트에게 "Scheduler를 직접 구현하지 않았으니 그 시스템은 네 설계가 아니다"라고도 하지 않습니다.

모든 구성요소를 직접 만드는 게 기준이 아니었던 겁니다. 어떤 문제를 풀려고 무엇을 골랐고 어떻게 조합했는가가 기준이었습니다.

그러면 글쓰기는 왜 모든 문장을 사람이 직접 쳐야 '내 글'이 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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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위험한 착각이 하나 생깁니다

AI가 쓴 글이면 전부 자기 글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가령 제가 AI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해봅니다.

"요즘 AI가 인기니까 조회수 잘 나오는 주제 하나 골라서 글까지 써줘."

AI가 주제를 고릅니다. 자료를 찾습니다. 문제를 정의합니다. 주장을 만듭니다. 근거를 붙입니다. 결론을 냅니다. 저는 읽어보지도 않고 그대로 발행합니다.

이때도 "AI는 도구일 뿐이고 저자는 나다"라고 말해도 되는 걸까요. 저는 어렵다고 봅니다. 사람이 한 일이라곤 Publish 버튼을 누른 것뿐이니까요.

그래서 기준은 AI를 썼느냐가 아닙니다. 생각이 사람과 AI 사이 어디에서 만들어졌느냐입니다.

글쓰기를 시스템처럼 분해해보면

IT 일을 오래 해서인지 이런 문제를 보면 자꾸 구조부터 나누게 됩니다. 글쓰기도 하나의 시스템이라고 놓고 봤습니다.

경험 → 문제 발견 → 질문 정의 → 판단 → 논리 구성 → 문장화 → 검증 → 발행

예전에는 이 파이프라인을 한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돌렸습니다. 그래서 저자를 가리기 쉬웠습니다.

AI가 들어오면서 단계가 쪼개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이 경험을 넣습니다. 문제를 발견합니다. 자기 판단을 말합니다. AI가 그걸 정리하고, 구조를 제안하고, 문장을 만듭니다. 사람이 읽습니다. 틀린 부분을 걷어냅니다. 자기 생각과 다른 부분을 다시 고칩니다. 그리고 최종 결과에 자기 이름을 겁니다.

이걸 'AI가 썼다' 한마디로 정리하는 게 정확한 서술일까요. 저는 점점 의심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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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내 사고방식을 학습한 것처럼 느껴진 순간

특히 재미있었던 건, 제가 지시하지 않은 판단까지 AI가 비슷하게 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저는 기술을 볼 때 기능만 보는 편이 아닙니다. 어떤 기술이 무료라고 하면 라이선스 가격만 보지 않습니다. 운영 인력은 몇 명이 붙어야 하는지, 장애가 나면 누가 푸는지, 기술부채는 얼마나 쌓이는지, 업그레이드는 누가 책임지는지, 그래서 총비용이 얼마인지를 같이 봅니다.

장애가 터졌을 때도 눈앞의 현상을 바로 원인으로 놓기보다 그 뒤의 구조를 보려고 합니다. 솔직히 이건 제 편향이기도 합니다. 코드를 치는 자리보다 운영을 책임지는 자리에 오래 앉아 있었으니까요.

그런 대화가 쌓인 상태에서 AI가 쓴 Kubernetes 글을 읽었더니, 결론이 기능이 아니라 운영과 책임 구조로 향해 있었습니다.

그때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문장은 제가 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 결론까지 가는 재료는 제가 넣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생각의 저자는 누구입니까.

어쩌면 AI는 새로운 '표현 계층'

개발에서 추상화는 생산성을 크게 밀어올렸습니다. 기계어를 직접 치던 시대에서 프로그래밍 언어로 올라왔고, 라이브러리와 Framework가 등장했고, Cloud가 인프라를 감쌌습니다. 이제 AI는 자연어 명령을 코드로 바꾸기도 합니다.

글쓰기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머릿속에는 생각이 있는데 글로 정리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논리 순서를 잡고, 문장을 다듬고, 겹치는 내용을 덜어내고, 읽는 사람이 이해하도록 다시 설명해야 합니다. AI가 이 구간을 상당히 빠르게 처리합니다.

그러니 AI를 '나 대신 생각하는 존재'로만 볼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때로는 제 생각을 사람이 읽을 수 있는 형태로 바꿔주는 표현 계층에 가깝습니다.

물론 이 계층은 기존 도구보다 훨씬 위험합니다. 워드프로세서는 제가 쓰지 않은 주장을 갑자기 만들어내지 않습니다. AI는 만듭니다.

사람이 검증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생각을 표현하는 도구가 아니라 생각을 대신 만드는 도구로 넘어갑니다. 이 경계가 중요합니다.

기준은 AI 사용 여부가 아닐지도

앞으로 AI로 쓴 글은 훨씬 많아집니다. 보고서도, 기획서도, 코드도, 제안서도, 논문도, 블로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AI 사용했습니까?"라는 질문 하나로 결과물의 값을 매기기 어려워집니다.

저는 이런 질문이 더 쓸모 있어진다고 봅니다. 이 글에서 당신이 발견한 문제는 무엇인가. 당신의 경험은 어디에 들어가 있는가. 중심 주장은 누구의 판단인가. AI의 답을 무엇을 근거로 받아들이거나 버렸는가. 틀렸을 때 누가 책임지는가.

여기에 답하지 못한다면 AI가 만들어준 글에 이름만 붙인 쪽에 가깝습니다. 반대로 자기 경험과 생각으로 AI와 계속 부딪히고, 결과를 판단하고 고치고, 최종 주장에 책임진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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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글은 누가 썼나

처음 질문으로 돌아갑니다.

제가 생각하고 AI가 문장을 만들었다면 이 글은 누구의 것일까요.

아직 저도 답이 없습니다.

AI가 없었다면 지금 이 문장과 구조는 안 나왔습니다. 그러니 AI가 기여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도 이상합니다. 하지만 제가 겪지 않은 일을 AI가 대신 겪은 것도 아니고, 제게 없던 관점을 복사해 붙인 것도 아닙니다.

제 경험과 질문과 판단이 있었고, AI가 그걸 구조화하고 표현했고, 저는 다시 읽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는 분명해 보입니다. AI가 대신 생각한 것과, 제가 생각한 것을 AI가 대신 표현한 것은 같지 않습니다.

앞으로는 글을 보고 "이거 AI로 썼습니까?"라고 묻는 대신 조금 다른 질문을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 글에서 당신이 한 생각은 무엇입니까?"

지금 읽고 계신 이 글도 제가 생각했고 AI가 문장으로 만들었습니다.

마지막 질문은 읽는 쪽에 넘겨두겠습니다. 이 글은 누구의 글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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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글쓰기#저자성#AI 협업#Kubernetes#생성형 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