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는 왜 실적보다 먼저 움직이는가 — 주식시장은 미래를 캐싱한다
- 1.주가는 왜 실적보다 먼저 움직이는가 — 주식시장은 미래를 캐싱한다현재 글
- 2.좋은 회사와 좋은 주식은 왜 다른가 — 기술력·매출·전망이 다 좋은데 사면 손실이 나는 이유
얼마 전 점심을 먹다가 후배가 휴대폰 화면을 들이밀었습니다. 사상 최대 실적이라고 기사가 났는데 주가는 파랗다고. 이게 말이 되냐고 물었습니다.
주식을 처음 들여다보는 사람이 제일 먼저 부딪히는 장면이 이겁니다. 돈을 제일 많이 번 해에 주가가 빠집니다.
반대 경우도 있습니다. 몇 년째 적자고 당장 손에 들어오는 돈도 얼마 없는 회사인데 주가는 계속 올라갑니다.
상식으로 보면 이상합니다.
돈을 잘 버는 회사의 주가는 오르고, 못 버는 회사의 주가는 내려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시장은 그렇게 안 움직입니다.
저는 인프라 쪽 일을 오래 해서, 뭔가 예상과 어긋나면 시스템 비유부터 꺼내 보는 버릇이 있습니다. 주식시장을 현재 데이터를 읽어서 반응하는 시스템으로 놓으면 계속 어긋납니다. 미래의 데이터를 미리 캐싱해두는 시스템으로 놓으면 그제서야 앞뒤가 맞습니다.
실적은 과거의 로그다
서버를 하나 맡았다고 해보겠습니다.
어제 CPU 사용률 30%, 장애 없음. 중요한 정보입니다.
그런데 이 정보만으로 내일도 멀쩡할 거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내일부터 대규모 이벤트가 열리고 트래픽이 10배로 들어온다면 어제 로그는 그냥 참고자료입니다.
운영하는 사람은 어제의 로그만 보지 않습니다. 앞으로 들어올 트래픽을 계산해서 미리 증설합니다.
주식시장도 그렇습니다.
기업이 발표하는 매출과 영업이익은 중요합니다. 다만 그건 이미 발생한 결과입니다. 기업이 남긴 로그인 셈입니다.
반면 주식을 사는 사람은 그 회사가 앞으로 벌어들일 돈을 계산합니다.
그래서 주가는 실적보다 먼저 움직입니다.
사상 최대 실적인데 주가는 왜 떨어질까?
어떤 회사가 지난해 1조 원의 이익을 냈습니다. 올해 시장은 1조 5천억 원을 기대했습니다. 실제로는 1조 3천억 원이 나왔습니다.
회사만 놓고 보면 대단한 성과입니다. 1조에서 1조 3천억으로 이익이 30% 늘었으니까요.
그런데 주가는 떨어집니다.
시장에는 이미 1조 5천억이라는 숫자가 들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실적이 나쁜 게 아닙니다. 미래에 걸어둔 기대가 너무 높았습니다.
IT식으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트래픽이 몰릴 걸 예상하고 서버를 잔뜩 늘려놨는데 실제로는 그만큼 안 들어온 겁니다.
그러면 다시 필요한 만큼으로 계산을 되돌립니다. 주식시장에서는 그게 가격 조정으로 나타납니다.
반대로 적자 기업의 주가는 왜 오를까?
아직 적자인 기업이 있다고 해보겠습니다.
지금 숫자만 보면 좋을 게 없습니다.
하지만 새 제품이 빠르게 크고 있고 시장 자체가 넓어지고 있으며 2~3년 뒤에는 꽤 큰 현금흐름이 나올 것 같다는 그림이 그려진다고 해보겠습니다.
투자자는 지금의 적자만 보지 않습니다. 미래의 이익을 미리 계산하기 시작합니다. 그 계산이 지금 가격으로 들어옵니다.
그래서 이런 일이 생깁니다.
실적은 적자인데 주가는 오른다.
이상한 현상이 아닙니다.
주식은 과거의 성적표를 사는 게 아니라 앞으로 만들어질 현금흐름에 대한 권리를 사고파는 것이니까요.
다만 여기에 위험이 붙습니다.
미래는 아직 안 왔습니다. 예측은 틀립니다.
기대가 커질수록 수익 가능성도 커지고 그만큼 깨질 자리도 넓어집니다.
주가는 현재 가치가 아니라 기대값의 가격이다
많은 사람이 이렇게 생각합니다.
좋은 회사 → 좋은 실적 → 주가 상승
실제 시장은 한 단계 더 돌아갑니다.
미래 예상 → 기대 형성 → 현재 가격 반영 → 실제 결과 확인 → 기대 수정 → 가격 재조정
실적이 주가를 움직이는 게 아니라 실적과 기대의 차이가 주가를 크게 흔드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이 차이가 눈에 들어오면 뉴스가 달리 읽힙니다.
"매출 30% 증가에도 주가 급락"이라는 기사를 보고 이상하다고 여길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를 더 확인하면 됩니다. 시장은 몇 %를 기대하고 있었는가.
그래서 좋은 회사와 좋은 주식은 다르다
여기서 문제가 하나 더 생깁니다.
정말 훌륭한 기업이 있다고 해보겠습니다.
매출도 늘고 기술력도 뛰어나고 점유율도 높습니다. 누가 봐도 좋은 회사입니다.
그런데 그걸 이미 모든 사람이 알고 있다면 어떨까요.
앞으로 10년 동안 크게 성장할 거라는 기대까지 가격에 다 들어가 있다면요.
좋은 회사라는 사실은 그대로입니다. 좋은 투자 대상인지는 별개로 갈립니다.
성능이 100인 서버를 100에 사는 것과 1,000에 사는 것은 완전히 다른 얘기입니다.
서버가 훌륭하다는 사실과 내가 낸 가격이 말이 되는지는 따로 놓고 봐야 합니다.
주식도 같습니다.
기업만 분석해서는 절반입니다. 기업의 가치와 시장이 이미 지불하고 있는 가격을 같이 봐야 합니다.
시장은 거대한 기대값 계산 시스템이다
저는 주식시장을 하나의 큰 분산 시스템으로 놓고 보는 편입니다.
참여자마다 들고 있는 정보가 제각각입니다.
누군가는 금리를 봅니다. 누군가는 기업 실적을 봅니다. 누군가는 산업 전망을, 누군가는 기술을, 누군가는 정책을, 누군가는 경쟁사의 움직임을 봅니다.
각자 판단해서 사고팝니다.
그 수많은 판단이 가격이라는 숫자 하나로 계속 압축됩니다.
물론 그 숫자가 늘 맞지는 않습니다.
사람이 참여하니까 공포도 있고 탐욕도 있고 정보 비대칭도 있습니다.
시장 가격은 정답이라기보다 그 순간 참여자들이 만들어낸 미래에 대한 집단적 기대값에 가깝습니다.
문제는 캐시가 틀렸을 때다
IT를 해본 사람은 캐시의 좋은 점과 무서운 점을 같이 압니다.
잘 맞으면 빠릅니다. 틀린 값이 앉아 있으면 일이 커집니다.
주식시장도 그렇습니다.
앞으로 크게 성장할 거라는 기대가 가격에 캐싱되어 있다고 해보겠습니다.
실제로 성장하면 아무 문제 없습니다. 기대가 더 붙기도 합니다.
그러다 어느 분기, 성장률이 예상보다 낮다는 게 확인됩니다.
그러면 시장은 기존 기대를 버립니다.
Cache Invalidation이 시작됩니다.
이때 주가는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빠집니다.
기업이 갑자기 망가진 게 아닐 수도 있습니다. 시장이 미래를 계산하던 숫자가 바뀌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이런 장면이 반복됩니다.
회사는 여전히 좋은데 주가는 반 토막이 납니다. 반대로, 회사는 아직 어려운데 주가는 두 배가 됩니다.
지금 숫자만 보면 설명이 안 됩니다. 기대값의 변화를 놓고 보면 어느 정도는 설명이 됩니다.
투자자는 미래와 가격을 동시에 본다
주식투자가 어려운 이유도 여기 있다고 봅니다.
좋은 기업을 찾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 기업이 앞으로 얼마나 벌 것인지, 시장은 이미 어디까지 기대해놨는지, 그 기대에 비해 지금 가격이 비싼지 싼지 — 세 가지가 동시에 돌아갑니다.
그래서 주식은 기업을 맞히는 게임이 아닙니다.
기업의 미래와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미래, 그 사이의 간격을 판단하는 게임에 더 가깝습니다.
저도 예전에는 회사만 열심히 봤습니다. 재무제표 뜯어보고 사업보고서 읽고, 그러면 답이 나올 줄 알았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절반만 본 셈입니다. 가격에 이미 뭐가 들어가 있는지는 한 번도 안 세어봤으니까요. 그 시절 매매 기록을 다시 보면 아직도 좀 민망합니다.
현재의 숫자는 중요합니다. 다만 그건 이미 찍힌 로그입니다.
주가는 그 로그 위에서 다음 상태를 계속 예측하는 중입니다.
그러니 첫 질문은 이쪽이 맞지 않나 싶습니다.
"이 회사가 좋은 회사인가?"가 아니라, "지금 이 가격에는 어떤 미래까지 들어가 있는가?"
다음 글에서는 한 단계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좋은 회사와 좋은 주식은 왜 다른가. 기술력도 좋고 매출도 늘고 미래도 밝은데 왜 그 주식을 사면 손실이 나는지. 가격이라는 문제를 이야기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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