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이 비싸다고 대출을 더 해주면 해결될까?

|Notes|14분 읽기

부동산 대출 이야기는 꺼내기가 참 어렵습니다.

LTV, DSR, 주택담보대출, 가계부채. 이런 단어가 두세 개 겹치는 순간 듣는 사람 표정이 굳습니다. 금융을 매일 다루지 않는 사람에게는 갑자기 남의 나라 얘기가 되어버리거든요.

얼마 전 직원과 점심을 먹다가 이 얘기가 나왔습니다. 제 설명이 계속 헛돌길래, 부동산을 배달 오토바이에 비유해봤습니다. 그랬더니 복잡하던 이야기가 의외로 간단해졌습니다.

배달하려면 오토바이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어떤 사람이 배달 일을 시작한다고 해보겠습니다.

이 사람에게 오토바이는 사치품이 아닙니다. 먹고살기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하는 생산수단입니다.

그런데 필요한 오토바이 가격이 500만 원이고, 지금 손에 쥔 돈은 100만 원뿐입니다.

나머지 400만 원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대출을 받거나 할부로 사면 됩니다. 여기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금융이 원래 이런 역할도 합니다. 지금 당장 돈은 부족하지만 앞으로 배달해서 벌어들일 소득이 있으니, 미래 소득의 일부를 현재로 당겨오는 겁니다.

여기서 질문이 하나 생깁니다.

이 사람에게 얼마까지 빌려줘야 할까요.

오토바이 가격이 500만 원이라는 이유만으로 400만 원을 빌려줘야 할까요.

아닙니다.

정상적인 금융이라면 먼저 이런 걸 봅니다. 이 사람이 배달해서 한 달에 얼마를 버는지, 생활비를 빼고 매달 얼마를 갚는지, 몇 년 동안 흔들리지 않고 상환하는지.

물건의 가격보다 사람의 상환능력이 먼저입니다.

그런데 오토바이 가격이 1,000만 원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입니다.

배달하려는 사람은 계속 늘어나는데 오토바이 공급이 부족해서 가격이 500만 원에서 1,000만 원으로 올랐다고 해보겠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배달기사 주머니에는 여전히 100만~200만 원 정도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이런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오토바이는 생계에 꼭 필요한데 서민들이 살 수가 없다." "대출 규제를 풀어서 800만~900만 원까지 빌릴 수 있게 해주자."

언뜻 들으면 합리적입니다. 당장 오토바이를 못 사던 사람이 사게 되니까요.

여기에 조건을 하나만 추가해보겠습니다.

오토바이 숫자는 그대로입니다.

100대밖에 없는데 사고 싶은 사람이 200명입니다. 그리고 200명 모두에게 900만 원씩 빌려줬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사람들이 갑자기 오토바이를 더 많이 갖게 되지는 않습니다. 대신 같은 오토바이를 놓고 더 많은 돈을 지불하는 능력이 생깁니다.

판매자 입장에서는 가격을 낮출 이유가 사라집니다. 심하면 더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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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다시 대출이 필요해집니다

오토바이 가격이 1,200만 원이 됐다고 해보겠습니다.

그러면 또 같은 말이 나옵니다.

"요즘 오토바이가 1,200만 원이나 하는데 900만 원 대출로 어떻게 사느냐."

그래서 한도를 1,100만 원으로 늘립니다. 공급은 여전히 100대입니다. 사람들이 지불하는 가격만 다시 올라갑니다.

이상한 순환이 만들어집니다.

가격 상승 → 대출 확대 → 구매력 증가 → 가격 경쟁 → 가격 상승 → 다시 대출 확대

문제를 풀려고 넣은 돈이 그대로 가격에 흡수되는 구조입니다. 부하를 못 견뎌서 서버를 늘렸는데, 늘린 만큼 트래픽이 다시 차올라 지표가 제자리로 돌아오는 상황을 저는 여러 번 봤습니다.

이제 오토바이를 집으로 바꿔보겠습니다

부동산 대출 문제도 저는 이 각도에서 봅니다.

집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래서 "주거는 필수인데 돈이 부족한 사람에게 대출을 해줘야 하지 않느냐"라는 주장도 이해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주택담보대출 자체가 문제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제가 걸리는 건 다른 지점입니다. 주택가격이 소득보다 훨씬 빠르게 올라갈 때 그 격차를 계속 대출로 메우는 게 얼마나 오래 굴러가느냐입니다.

사람들이 소득과 자산을 놓고 5억 원 정도를 감당한다고 해보겠습니다. 그런데 집값이 10억 원입니다.

해결책은 여럿입니다. 주택을 더 공급하거나, 교통망을 개선해 살 만한 지역을 넓히거나, 임대시장을 손보거나, 소득이 올라가거나, 가격이 조정되거나.

가장 간단한 해결책은 하나입니다.

5억을 더 빌려주는 겁니다.

당장은 풀린 것처럼 보입니다. 10억짜리 집을 사게 됐으니까요.

하지만 많은 사람에게 동시에 5억씩 더 빌려준다고 해서 집이 한 채라도 더 생기지는 않습니다.

10억을 지불하는 능력이 생겼을 뿐입니다.

대출은 집을 싸게 만들어주는 정책이 아닙니다

제가 중요하게 보는 부분이 여기입니다.

대출 확대는 집의 가격을 낮추지 않습니다. 비싼 집을 사는 구매력을 만들어줍니다.

물론 현실의 부동산 가격이 이렇게 단순하게 결정되지는 않습니다. 금리, 공급량, 지역별 수요, 인구구조, 소득, 세금, 재건축·재개발, 토지가격, 기대심리가 동시에 움직입니다. 대출을 늘렸다고 집값이 같은 비율로 오른다는 뜻도 아닙니다.

다만 공급이 묶인 시장에서 신용이 크게 풀리면 입찰 가능한 금액이 커지고, 그게 가격을 떠받치는 요인 하나로 작동한다는 점은 한 번 생각해볼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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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오토바이와 다릅니다

이 비유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오토바이는 시간이 지나면 대개 가치가 떨어집니다. 집은 토지와 입지를 끼고 있어서 값이 오르기도 합니다. 담보로도 쓰이고 임대소득도 만듭니다. 오토바이 할부와 주택담보대출을 같은 물건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오히려 이 차이 때문에 부동산 문제가 더 꼬인다고 봅니다.

집값이 오르면 담보가치가 올라갑니다. 담보가치가 올라가면 금융기관은 더 많은 돈을 빌려줄 여지가 생깁니다. 그 돈이 다시 부동산 시장으로 들어가면 구매력이 커집니다.

집값 상승 → 담보가치 상승 → 신용 확대 → 구매력 증가 → 다시 집값 상승

이런 되먹임이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DSR을 봅니다

금융에서 던져야 할 질문은 단순합니다.

"이 집이 얼마짜리인가"보다 "이 사람이 실제로 얼마를 갚는가"입니다.

배달기사가 1,000만 원짜리 오토바이를 사고 싶다고 해서 1,000만 원을 빌려주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배달로 만드는 현금흐름을 보고 대출 규모를 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주택도 마찬가지입니다. 담보가 10억이든 15억이든 그 값만 보고 돈을 내주는 것보다, 차주의 소득과 상환능력을 같이 보는 쪽이 시스템 안정성에서는 낫다고 봅니다.

그래서 LTV보다 DSR이라는 개념을 처음 접했을 때 저는 상당히 합리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산가격이 아니라 현금흐름을 보겠다는 얘기니까요.

솔직히 저도 대출 한도가 늘어난다는 기사를 보면 순간적으로는 반갑습니다. 딸 둘 키우면서 집 계산을 매달 하는 입장이라 그렇습니다. 그러다 계산기를 두드리면 기분이 금방 식습니다. 한도가 늘어난 만큼 제가 부를 수 있는 가격도 같이 올라갔을 뿐이라는 걸 아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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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은 여기서 시작합니다

저는 대출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적절한 대출은 경제에 필요합니다. 앞으로의 안정적인 소득으로 지금 필요한 자산을 사게 해주는 게 금융의 역할 중 하나입니다.

다만 이런 질문은 한 번 해볼 만합니다.

집값이 너무 비싸서 사람들이 집을 못 산다면, 그 답이 계속 더 많은 돈을 빌려주는 쪽이어야 할까요.

배달기사가 500만 원짜리 오토바이를 살 돈이 없어서 400만 원을 빌려주는 건 납득이 됩니다. 그런데 오토바이가 1,000만 원이 되고, 다시 1,500만 원이 될 때마다 "생계에 필수니까 한도를 더 늘려주자"고 하는 게 답일까요.

대출은 비싼 집을 싸게 만들어주지 않습니다. 비싼 집을 사도록 미래의 소득을 현재로 당겨올 뿐입니다.

그리고 그 소득을 얼마나 당겨올지는 집값이 아니라 그 사람이 감당하는 선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날 점심 자리에서도 여기까지 얘기하고 멈췄습니다. 그럼 답이 뭐냐고 묻길래, 저도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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